[강연후기] 명화, 시대를 담다 - 명작을 따라 걷는 일본 미술관

전원경 교수님의 일본 미술관 기행 특별 강연
2025년 3월 27일(목)

1. 일본과 유럽 사이의 오랜 관계: 규슈에 상륙한 유럽인들

16세기 중엽, 포르투갈 상인들과 선교사들이 규슈에 상륙하면서 일본과 유럽 간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이후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 정책으로 유럽과의 직접적인 교류는 제한되었지만,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통해 네덜란드와의 교류는 계속 이어졌다. 이처럼 제한적이나마 지속된 유럽과의 접촉은 이후 일본 개항의 배경이 되었고, 일본인들의 서양 문화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1853년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가 "흑선(검은 배)"을 이끌고 에도만에 진입하면서 일본은 강제로 개항하게 된다. 일본인들에게 이 검은 배는 무섭고 불안한 존재였으며, 근대화의 서막이기도 했다. 개항 이후 일본 정부는 빠르게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유학생 파견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일본 최초의 공식 유학생 5명 중에는 후에 초대 총리가 되는 이토 히로부미도 있었다.

2. 자포니즘: 유럽, 일본에 열광하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일본의 미술과 공예, 의복, 정원 문화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를 **자포니즘(Japonisme)**이라 부르며, 프랑스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화가들—특히 모네, 드가, 반 고흐 등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 목판화(우키요에)는 구도와 평면적인 색채, 일상의 순간을 담는 시선으로 유럽 화가들에게 큰 신선함을 주었다.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큰 파도>, 히로시게의 풍경화, 우타마로의 미인화 등은 수집 대상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3. 인상파 회화 속에 등장한 일본

모네는 지베르니 자택 정원에 일본식 다리를 설치하고 연못에 수련을 심었다. 이 정원은 그의 대표 연작인 <수련> 시리즈의 무대가 되었고, <일본식 다리와 수련> 작품은 그 정점을 이룬다. 하코네의 폴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반 고흐는 호쿠사이와 히로시게의 목판화를 수집하며 그 영향을 받았다. 일본적인 간결한 선, 평면적 색감, 자연에 대한 관심이 그의 그림 곳곳에서 드러난다. 고흐는 심지어 자신을 "일본의 화가"라고 표현할 정도로 일본 미술에 심취했다. 그의 <귀를 자른 자화상>은 현재 하코네 폴라 미술관과 아티존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부댕은 모네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트루빌의 해변 풍경을 그린 작품에서도 일본의 정적인 풍경 구도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4. 도쿄와 하코네에 소장된 인상파 작품들

아티존 미술관 (도쿄)

반 고흐, 세잔,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파 및 근대 유럽 회화의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폭넓게 소장.
고흐의 자화상 포함.

국립서양미술관 (도쿄, 우에노)

마네, 모네, 드가, 세잔, 고갱 등 유럽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작품 중심.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서양미술 컬렉션.

하코네 폴라 미술관 (하코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속 미술관 중 하나.
모네의 <수련과 일본식 다리>, 반 고흐의 자화상, 르누아르의 여성 초상 등 소장.
고흐, 드가, 시슬레, 시냑 등 다채로운 인상파 및 신인상파 작품 보유.

일본 재력가와 인상파 컬렉션의 배경

메이지 유신 이후 산업화와 근대화로 일본에는 거대 재벌과 기업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서양 문물을 수입하며 문화적 권위와 품격의 상징으로 유럽 미술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상파 작품은 당시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 가능했고, 그 결과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상파 작품을 소장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기업들이 설립한 미술관(예: 폴라 그룹, 브리드스톤/이시바시 재단 등)은 자신의 정체성과 미학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참고 작품

클로드 모네, <수련과 일본식 다리> (하코네 폴라 미술관)
반 고흐, <귀를 자른 자화상> (하코네 폴라 미술관, 아티존 미술관)
호쿠사이, <가나가와의 큰 파도>, <맑은 아침의 후지산> (오타 우키요에 미술관)
우타마로 하루노부, <세 명의 미인> (1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