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정치 vs 시장의 냉정한 반응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정책은 미국 내에서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중국을 비롯한 주요 무역 파트너에게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고, 그 목적은 단순했다. 무역적자를 줄이고, 해외로 빠져나간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다시 되찾아오겠다는 것.
하지만 이 정책은 실질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또, 왜 많은 경제학자들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비경제적”이라 평가했을까?
관세의 본질: 외국을 벌주는 세금이 아닌, 자국민이 부담하는 세금
관세는 수입품에 부과하는 세금이지만, 그 비용은 대부분 최종 소비자인 자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가 붙으면, 이는 결국 미국 소비자들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함으로써 해결된다. 뿐만 아니라, 철강·알루미늄 같은 중간재에 관세가 붙으면 미국 내 제조업체들도 원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즉, “외국 기업을 벌주는 정책”이 아니라, 사실상 자국 경제를 조용히 갉아먹는 정책이 되는 것이다.
미국으로의 제조업 귀환? 현실은 다르다
트럼프가 관세 정책을 통해 제조업을 미국으로 다시 끌어오겠다는 주장을 했지만, 노동비용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는 단순한 세금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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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평균 시간당 임금: $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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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및 동남아: $3~5
이러한 격차는 관세 10~20%로는 도저히 상쇄할 수 없는 수준이며, 공장을 미국으로 옮긴다 해도 대부분은 자동화된 생산라인이기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의 고용 효과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정책은 정치적으로 성공했는가?
이쯤 되면 당연히 궁금해진다.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정책이 왜 정치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었을까?
1. 전국 평균 실업률과 지역별 체감은 다르다
트럼프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4% 미만으로,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였다.
하지만 이는 국가 전체의 수치일 뿐, 러스트벨트와 같은 제조업 쇠퇴 지역에선 체감 경제가 여전히 침체 상태였다. 이런 지역 유권자들에게 트럼프의 메시지는 강하게 어필했다.
“워싱턴은 당신들을 버렸지만, 나는 아닙니다.”
2. 양질의 일자리 상실에 대한 분노
단순히 일자리가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고임금·장기고용 중심의 제조업 일자리가 서비스업 저임금 일자리로 바뀐 구조적 변화에 대한 분노가 누적된 상태였다. 트럼프는 이 감정을 정확히 짚어냈다.
3. 시장과 대중의 간극
시장(나스닥, 다우지수 등)은 미래의 수익과 안정성에 따라 움직인다.
반면 유권자는 과거의 상처, 현재의 불만,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
트럼프는 이 간극을 이용했다.
“월스트리트, 실리콘밸리는 당신들의 고통을 모른다. 나는 안다.”
시장은 용서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정치적으로는 일시적인 지지를 이끌어냈지만, 금융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무역전쟁의 불확실성, 글로벌 공급망의 혼란, 기업들의 이익 감소 우려로 인해 나스닥, 다우지수는 수차례 급락했고, 투자자들은 리스크를 회피하며 보수적으로 돌아섰다.
결국, 2020년 팬데믹으로 인해 드러난 경제 취약성과 함께, 트럼프는 경제 신뢰를 잃고 중도층의 지지를 잃은 채 대선에서 패배했다.
경제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지만, 정치가 숫자를 외면한 대가를 결국 시장이 계산해버린 셈이다.
향후 관세전쟁, 어디로 갈 것인가?
정서적 정치의 파장은 끝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전쟁은 단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 미국은 무역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고, 지금도 여전히 그 여파가 세계 경제 전반에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관세전쟁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1. 관세는 사라지지 않는다. 더 ‘정교해질’ 뿐이다
관세는 이제 단순히 무역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미국의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한 지정학적 무기로 변모했다. 앞으로도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같은 핵심 산업군에 대한 고율 관세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더 정밀하게 설계될 것이다.
즉, 무차별적인 관세 시대는 끝났지만, 산업별·제품별로 타겟팅된 ‘정교한 관세 체제’는 계속될 전망이다.
2. 중국은 보복하겠지만, 전면전은 피할 것이다
중국은 대응으로 일부 품목에 대한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지만, 현재 경제 회복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면적인 무역전쟁은 회피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대신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로 시장과 공급망을 다변화하며 미국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전략을 짤 것이다.
이는 미국이 의도한 ‘디커플링(de-coupling)’ 혹은 ‘디리스킹(de-risking)’과 일정 부분 일치하며, 양국 모두 일정한 선에서 균형을 맞추려 할 가능성이 있다.
3. 공급망 재편이 완료되면, 일부 관세는 협상 카드로 쓰일 수도 있다
미국은 현재 반도체·전기차·AI 등 첨단 분야에서 자국 중심 또는 우방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작업이 어느 정도 완료되면, 미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일부 관세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가능성이 있다.
즉, 지금의 관세는 “경제 제재”가 아니라 “외교 도구”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무역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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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 설명 | 가능성 |
정면 충돌 지속 | 양국이 보복 관세를 주고받으며 확전 | 낮음 |
전략 산업 중심의 고도화 | 첨단기술 중심의 정교한 관세 체제 유지 | 매우 높음 |
일부 관세 철회 협상 | 외교·공급망 카드로 관세 일부 조정 | 중간 |
완전한 자유무역 복귀 | 양국이 전면적으로 관세를 철회 | 매우 낮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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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감정이 촉발한 관세전쟁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복잡한 전략게임으로 바뀌고 있다. 단순히 누가 옳고 그르냐를 넘어, 지정학·기술패권·국내 정치라는 복합 전선 위에서 관세는 이제 사라질 수 없는 무기다.
결국 이 싸움의 끝은 경제가 아닌, 전략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감정에 호소한 정치, 숫자에 심판받은 정책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경제학적으로 실패한 사례지만, 정치적으로는 한때 효과적이었던 전략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서적 메시지가 선거에선 통할 수 있지만, 정책이 실체를 갖지 못하면 결국 주가가, 투자심리가, 국민 경제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정치는 감정으로 움직이지만, 경제는 냉정한 현실로 되돌아온다.